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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또는 작가의 시작 003 거룩한 소명 당신의 친구들이나 식구들은 당신이 자신만의 신성한 공간에 앉아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당신이 하는 일을 "타이핑" 또는 "당신의 새로운 취미 생활" 정도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취미 생활이 아니다. 우표 수집이나 동전 모으기, 그런 게 취미 생활이다. 글쓰기는 소명이다. 024 진짜 작가란 내가 진지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대 때이다. 당시 내겐 아기가 둘 있었다. 나는 식탁에서도 글을 썼고, 젖을 먹이면서도 글을 썼으며 침실의 낡은 화장대에 앉아 글을 썼고, 나중에는 작은 스포츠카 안에서 학교가 파하고 나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개들이 내게 침을 질질 흘릴 때에도 글을 썼고 고양이들이 내 원고에 먹은 것을 게우는 가운데에서도 글을 썼.. 더보기
죽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 마음산책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이다. 나는 알고 싶다. 죽은 뒤에도 미워하고픈 사람이 나타날까.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죽으면 용서하게 될까. 나도 죽으면 모두들 “좋은 사람이었지”라고 추억해줄까. 죽으면 그런지 아닌지도 모를 테니 시시하다. 주변 사람들이, 내 주위의 세상이 스웨터를 뒤집은 듯 친절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거미가 되어 그물을 펼치고 누군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서랍에 넣어둔 먼지투성이 물건에 때때로 볕을 쪼이는 것처럼, 나는 그녀 앞에서 심술궂은 마음을 펼쳐보인다. 그녀는 신이 내게 준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 말을 듣자 마음속에 팟, 하고 강렬한 빛이 내리쬐듯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분.. 더보기
사는 게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 마음산책 점심 무렵이 지나서 엄마 요양원에 갔다. 민머리에 모자를 쓰고 갔다. 엄마는 쿨쿨 자고 있었다. 이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피곤해서 엄마 침대로 파고들었다. 엄마는 내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 남잔지 여잔지 모를 사람이 있네." "엄마 남편은 사노 리이치지?" "아무것도 안 한지 한참 됐어." 아무것도라는 건 뭘까. 설마 엉큼한 그것일까?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왠지 투명하게 느껴지는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엉큼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내가 큰소리로 웃자 엄마도 소리 내어 웃었다. "엄마, 인기 많았어?" "그럭저럭." 정말일까? "나 예뻐?" "넌 그걸로 충분해요."또다시 웃음이 터져버렸다. 엄마도 따라 웃었다. 갑자기 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