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산책

휘파람 부는 사람 갑자기 그녀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어. 내가 갑자기라고 말하는 건 그녀가 30년 넘게 휘파람을 불지 않았기 때문이지. 짜릿한 일이었어. 난 처음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나 했어. 난 위층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그녀는 아래층에 있었지. 잡힌 게 아니라 스스로 날아든 새, 야생의 생기 넘치는 그 새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지저귀고 미끄러지고 되돌아오고 희롱하고 솟구치는 소리였어. 이윽고 내가 말했어. 당신이야? 당신이 휘파람 부는 거야? 응, 그녀가 대답했어. 나 아주 옛날에는 휘파람을 불었지. 지금 보니 아직 불 수 있었어. 그녀는 휘파람의 리듬에 맞추어 집 안을 돌아다녔어.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어. 팔꿈치며 발목이며. 기분이며 욕망이며. 고통이며 장난기며. 분노.. 더보기
죽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 마음산책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이다. 나는 알고 싶다. 죽은 뒤에도 미워하고픈 사람이 나타날까.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죽으면 용서하게 될까. 나도 죽으면 모두들 “좋은 사람이었지”라고 추억해줄까. 죽으면 그런지 아닌지도 모를 테니 시시하다. 주변 사람들이, 내 주위의 세상이 스웨터를 뒤집은 듯 친절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거미가 되어 그물을 펼치고 누군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서랍에 넣어둔 먼지투성이 물건에 때때로 볕을 쪼이는 것처럼, 나는 그녀 앞에서 심술궂은 마음을 펼쳐보인다. 그녀는 신이 내게 준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 말을 듣자 마음속에 팟, 하고 강렬한 빛이 내리쬐듯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분.. 더보기
사는 게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 마음산책 점심 무렵이 지나서 엄마 요양원에 갔다. 민머리에 모자를 쓰고 갔다. 엄마는 쿨쿨 자고 있었다. 이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피곤해서 엄마 침대로 파고들었다. 엄마는 내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 남잔지 여잔지 모를 사람이 있네." "엄마 남편은 사노 리이치지?" "아무것도 안 한지 한참 됐어." 아무것도라는 건 뭘까. 설마 엉큼한 그것일까?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왠지 투명하게 느껴지는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엉큼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내가 큰소리로 웃자 엄마도 소리 내어 웃었다. "엄마, 인기 많았어?" "그럭저럭." 정말일까? "나 예뻐?" "넌 그걸로 충분해요."또다시 웃음이 터져버렸다. 엄마도 따라 웃었다. 갑자기 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