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 영화는 직접 봤으면 좋겠다.
어떤 스포일러도 일러주고 싶지 않다.
다만, 왜 내게 이 영화를 보라고 했는지 알겠다.
나는 많이 울었고, 그리고 이제 괜찮다.
소설 '나의 피투성이 연인'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그의 파일을 열어봤어요."
널 위해서가 아니야. 당신은 내 속에서, 언제까지나, 마지막 보여주었던 그 모습처럼, 나의 피투성이 연인으로 남아 있어야 해.
지나고 보니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어떤 일도 견뎌내는 게 인간이더라. 뭘 못 견디겠어.
오늘 밤 돌아가 당신 파일을 열어 하나하나 딜리트 키를 누르고 가려움도 딜리트 키를 눌러버리고, 그렇게 견뎌볼까 봐.
차갑긴 하겠지만 마지막 보았던 당신의 얼굴을 껴안고 말이야.
당신은 언제까지 나를 물어뜯으며, 나의 연인으로 남아 있어야 해. 피투성이의 연인, 잔혹한 연인.
당신이 특별히 가혹한 사람이란 생각은 안해.
모든 연인은 더 사랑하는 자에게 잔혹한 존재이니까.
사랑이 아름답고 따스하고 투명한 어떤 것이라고는 이제 생각지 않을래. 피의 냄새와 잔혹함, 배신과 후회가 없다면 그건 사이보그의 사랑이 아닐까 싶어.
당신, 전등사 갔던 날 기억나? 사랑도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전등사를 보지 못한 그날을 전등사 갔던 날, 로 이름 지었듯 뭔가가 빠져 있는 그대로 그냥 사랑이라고 불러주는 거지.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어요. 누군가가 열어보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요. 이미 발표된 글들 외엔, 일기도, 쓰고 있던 작품도 없었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에게 유선은 물어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