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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 마음산책


점심 무렵이 지나서 엄마 요양원에 갔다. 민머리에 모자를 쓰고 갔다. 엄마는 쿨쿨 자고 있었다. 이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피곤해서 엄마 침대로 파고들었다. 엄마는 내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 남잔지 여잔지 모를 사람이 있네."

"엄마 남편은 사노 리이치지?"
"아무것도 안 한지 한참 됐어."

아무것도라는 건 뭘까. 설마 엉큼한 그것일까?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왠지 투명하게 느껴지는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엉큼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내가 큰소리로 웃자 엄마도 소리 내어 웃었다.

"엄마, 인기 많았어?"
"그럭저럭." 정말일까?
"나 예뻐?"
"넌 그걸로 충분해요."

또다시 웃음이 터져버렸다. 엄마도 따라 웃었다.
갑자기 엄마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여름은, 발견되길 기다릴 뿐이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엄마, 나 이제 지쳤어. 엄마도 아흔 해 살면서 지쳤지? 천국에 가고 싶어. 같이 갈까? 어디 있는 걸까, 천국은."
"어머,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던데."



+) 좋아서 자주 꺼내 읽어보는 부분. 그럴듯한 멋진 말들 말고 사노 요코 할머니처럼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경쾌한데 뭉클하고, 씁쓸하지만 또 따뜻한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도대체 사는 게 뭐라고. 아님, 그까짓 사는 게 뭐라고. 뭐, 그렇고 그런 삶의 풍경 말이다. 나도 할머니쯤 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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