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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러브레터

최근의 포스팅들이 의도치 않게 참 우울했다.

오늘은 달달한 이야기를 올린다. 시인 이상의 러브레터이다.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1910∼1937·사진)이 짝사랑하던 여인에게 보낸 친필 ‘러브레터’가 발견됐다. 앞서 그가 동료 작가 김기림과 안회남 등에게 쓴 10편의 편지가 공개된 적이 있으나, 이 같은 구애의 편지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편지는 이상이 25세이던 1935년 12월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열렬한 사랑을 보냈던 대상은 23세의 젊은 이혼녀였던 최정희(1912∼1990) 작가였다. 최 작가는 일본으로 건너가 연극무대에서 활동했고, 귀국 후 삼천리, 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는 등 당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신여성으로 이름을 날렸다. 시인 백석도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젊은 문인들에게서 숱한 구애를 받았다. 하지만 납북 시인 김동환(1901∼?)과 사귀었고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편지는 최 작가와 김 시인의 둘째 딸이자 소설가인 김채원 씨가 고인의 편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사랑을 얻지 못했기에 이상의 편지는 더 애절하고 구슬프다. 더구나 편지를 쓰고 2년 뒤 이상은 27세의 나이에 일본에서 숨을 거둔다.

 

- 2014년 07월 23일 문화일보 발췌.

 

 

 

 

이상.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 최정희.

 

 

 

 

 

*** 이상의 러브레터 전문 (원래 표기에 필요시 현대어 표기 병기)

 

 



지금 편지를 받엇스나 엇전지(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안는 것이 슬품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하기 발서(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번이 내 시골 잇든 때입니다.

이른 말 허면 우슬지 모루나 그간 당신은 내게 크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닷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구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엿는지는 모루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머러지고 잇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이 알엇섯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거름이 말할 수 없이 헛전하고 외로�습니다. 그야말노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거러면서 나는 별 리유도 까닭도 없이 작구 눈물이 쏘다지려구 해서 죽을번 햇습니다..

집에 오는 길노(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우슬(웃을) 편지입니다.

"정히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됫섯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섯다. 내 이제 너와 더불러 즐거�던 순간을 무듬 속에 가도 니즐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 처름 어리석진 않엇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안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기 거울 갓기를 빌지도 모룬다.

정히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품을, 너를 니즐(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 하지만 정히야, 이건 언제라도 조타.(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조코 래일이래도 조타.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찻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듸 내게로 와다고-. 나는 진정 네가 조타. 웬일인지 모루겟다. 네 적은 입이 조코 목들미(목덜미)가 조코 볼다구니도 조타.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히야 너를 위해 네가 닷시 오기 위해 저 夜空(야공: 저녁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이 사러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엿스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엇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잇슬 줄을 알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름 약어보려구 햇슬(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엇든지 내가 글을 쓰겟다면 무척 좋아하든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름 속삭이든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두록 언잖게 하는 것을 엇지 할 수가 없엇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스면 좋겟다구 해서 쓰기로 헌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맛나고 싶다고 햇스니 맛나드리겟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 허트저 당신 잇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날 오후 다섯시에 후루사토[故鄕]라는 집에서 맛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작은 입과 목덜미와 볼다구니조차 좋았던 그녀,

하지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그녀, 

그러다가도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미워지기까지 한 그녀.

당신이 보면 웃을 편지지만, 나는 그대를 위해 저녁하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겠노라 -

 

시인은 시인인가 보다.

읽어내려가면서 마음 절절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이토록 부끄럽고 솔직한 민얼굴 같은 러브레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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