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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완벽한 날들

저자
메리 올리버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3-02-2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퓰리처상 수상 시인, 음악과 같은 언어로 삶을 어루만지다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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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

마음이 많이 지쳐 있던 때,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60페이지에 있는 '완벽한 날들' 이란 글을 읽는데...

그 순간 나는 8살 꼬마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전 어렸을 때 차도 다니지 못하는 

아주 깊은 산 속, 작은 마을에 살았었어요.

 

그땐 동네에 아이라곤 저와 제 동생 뿐이라 만날 하는 놀이라는 게 

발가벗고 집 앞 개울가에서 헤엄치는 거였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는 40분 거리의 산길을 걸어 다녔어요.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맞으면서 집으로 걸어왔죠.

 

초여름.

비가 오면 산으로 둘러싸인 그 길은 웅웅- 왕왕 울었어요. 

개울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나뭇잎 끝에 모여들어 방울방울 떨어지던 초록비.

움푹 팬 물구덩이를 청개구리가 팔짝팔짝 뛰면서 지나갔죠.

찰방찰방 젖은 흙을 밟으면서 걷던 조그마한 내 발걸음. 

 

아직도 눈 감으면 떠오르는 선명한 소리와 공기, 냄새.

제게도 아주 평범했지만 발작적인 행복감이 밀려왔던, 그런 완벽한 순간이 있었어요.

아마도 제 감성의 팔 할은 그때 다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네요.

그리워요. 

 

시인이 '완벽한 날들'에서 이야기한,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은

제가 쓰고 싶은 글과도 같습니다. 어떤 글이냐고요?

시인의 글을 읽어보면 알아요. 어떻게 설명이 힘드네요.

 

봄날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이 책은

드뷔시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아주, 행복해집니다.

 

그러고 보면 책과 음악의 힘은 정말 굉장한 것 같죠?

시인이 적은 '완벽한 날들'을 옮겨볼게요.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산은 산이다. 모든 햇살 눈부신 여름날에 산은 지극히 한결같다. 가을의 숲도, 길고 푸른 나날에 늘 똑같다. 호수도, 그 에너지들이 눈에 보이는 확실한 습성 속에서 움직이는 바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그렇다면 오톨도톨한 알갱이들로 이루어지고, 잎이 무성하고, 액체인 세상은 얼마나 단순한 곳인가! 움직임의 거장 아이올로스만 아니라면 말이다.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는 자신의 동굴에 바람들을 가두어뒀다가 기분 내킬 때마다 세상으로 날려 보내서 하나의 세상이 아닌 수천 개, 수백만 개의 세상을 만든다!

 

우리가 쓰는 날씨라는 말은 과거 어느 시기에 바람 혹은 공기를 뜻하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바람이 찾아오는가? 속삭이는 바람, 아니면 울부짖는 바람? 짓밟는 바람, 아니면 봄의 부드러운 손길 같은 바람? 그건 올바른 확실성들 사이의 변화의 매듭, 고요를 뒤흔들어 광란 상태로 만들었다가 다시 그지없는 행복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촉매제다.

 

나는 최소량의 날씨를 선호한다. 아주 조금이면 된다. 최고의 날씨는 날씨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워즈워스처럼 바다보다는 호수가, 흰 눈 덮인 험한 산봉우리보다는 완만한 초록의 산이 좋다. 역사를 만드는 격렬한 활동보다는 사색에 잠기고 작품도 구상할 수 있는 길고 쉬운 산책이 좋다. 나는 최고 날씨의 작고 유익한 움직임들이 좋다. 그것들은 장엄한 움직임이 아니다. 폭풍우, 사이클론, 홍수, 빙하, 산사태처럼 뉴스거리가 되고 영웅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아니다.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역경, 심지어 비극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스승이 된다.

 

우리 모두 도전과 용맹을 찬양한다. 바람 없는 날 단풍나무들이 천개를 길게 드리우고 푸른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때, 어느 향기로운 들판에서 불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된 바람이 살그머니 우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우리가 하는 건 무엇인가? 너그러운 땅에 누워 편안히 쉬는 것이다. 그리고 잠이 들기 십상이다.

 

몇 해 전, 이른 아침에 산책을 마치고 숲에서 벗어나 환하게 쏟아지는 포근한 햇살 속으로 들어선 아주 평범한 순간, 나는 돌연 발작적인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그건 행복의 바다에 익사하는 것이라기 보단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행복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행복이 거저 주어졌다. 시간이 사라진 듯했다. 긴급함도 사라졌다. 나 자신과 다른 모든 것들 간의 중요한 차이도 다 사라졌다. 나는 나 자신이 세상에 속해 있음을 알았고 전체에 속박되어 있는 것이 편안했다. 그렇다고 세상의 수수께끼를 푼 기분을 느낀 건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혼란 속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여름 아침, 그 평온함, 내가 서 있는 풀밭은 떨림조차 거의 없지만 위대한 일이 행해지고 있다는 느낌. 아주 평범한 순간이었고 흔히 말하는 신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환각도, 특별한 것도 없었고 하나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나뭇잎들과 먼지와 지빠귀들과 되새들과 남자들과 여자들에 대한 갑작스러운 인식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었고 그 후로 몇 해 동안 그 순간을 토대로 많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내 이야기에는 산이나 계곡, 눈보라, 우박 혹은 세상을 할퀴고 지나가는 송곳 바람이 들어 있지 않다. 나의 희귀하고 경이로운 인식은 그런 분주한 시간에는 찾아오지 않는 듯하다. 날씨에 관한 이야기들은 폭풍이나 악천후를 만난 일, 얼음 덮인 좁은 산길을 기어오르거나 반쯤 언 늪을 건넌 것에 대한 내용이기 쉽다. 나는 그 반대되는 내용을 특별하게 만들어서 그런 이야기들의 가치를 떨어뜨릴 생각은 없다. 악천후 속에서 개인의 정신과 우주의 교감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감히 내 의견을 말하자면, 그런 교감은 푸른 하늘의 축복 아래 햇살 가득한 세상이 평온을 구가하고 바람의 신이 잠들었을 때, 그 조용한 순간에 몰입하는 사람에게 일어나기 쉽지 않을까 한다. 그런 때 우리는 모든 겉모습과 부분성의 베일을 들추고 그 속에 숨겨진 걸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태양의 장미꽃잎들 속에 서서 바람이 벌의 날개 아래서 졸면서 내는 소리보다 크지 않게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강력한 가정에(심지어 확실성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평온한 날씨도 엄연히 날씨이며 보도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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