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트리다트 왕 이야기를 생각했다. 현명한 왕이었던 미트리다트는 아버지가 암살당했기 때문에 자신도 독살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날마다 독약을 조금씩 마시면서 자기 몸을 독약에 길들였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슬픔과 포기에 스스로 길들도록 교육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의 몸과 우리의 정신은 점점 그 독에 익숙해져서
끔찍한 일이 닥쳐도 마침내 더는 반응할 수 없기에 이른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삶에 반응할 수 없을 것이다.
슬픔과 우울은 더는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것, 정상적인 것, 우리의 일상이 된다.
...
내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슬픔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관적인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낙관적인 자세와 열정이 필요하다.
마음에 드는 역설이다. (나는 내가 역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르탱 파주.
'더러운 나의 불행 너에게 덜어 줄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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