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두 가지를 결심했다.
하나, TV 없애기.
둘, 식물 키우기.
TV 없애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새벽 2시쯤이었던가? 갑자기 생각이 들어서 TV를 없애버렸다.
TV가 없는 집은 조용하다.
햇살이 때에 따라 각각의 색깔로 쏟아지고, 공기 소리와 시계 태엽 소리가 들린다.
슬로우, 슬로우. 집안의 시간이 느긋하게 흐른다.
시간을 좀 더 세밀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물론 심심할 때나 활기찬 시끄러움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라디오를 청취한다.
안방으로 자리를 옮긴 TV는 영화감상용 모니터로 사용하고 있다.
종종 보고 싶은 영화들을 찾아서 본다. 그저께는 '리틀 포레스트'를 감상했다.
TV가 사라진 TV대에는 식물들을 데려왔다.
뱅갈고무나무와 스킨답서스, 줄리아 페페와 페페, 해피트리와 황금사철을 데려왔다.
고백하건대 나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키워본 적이 없고 키울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그것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책임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죽고 난 후에는 끔찍하고 번거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돌아다니며 튼튼하고 맘에 드는 식물들을 골라왔다.
언제 어떻게 물을 줘야 할지, 빛은 얼마나, 바람은 얼마나 맞게 해줘야 하는지.
겨우 식물 몇 개 키우는 것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래도 금방 정이 생겨서 정성을 쏟아 키웠다.
아침에 일어나 초록색 식물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 웃음이 저절로 번졌다.
그런데 줄리아 페페가 죽었다.
잎 모양이 날렵하니 예쁘고, 마치 초록색 스트라이프 옷을 입은 것 같아 경쾌했던 녀석이었다.
나는 무척이나 속상했다. 식물이 죽어서 속상한 적은 처음이었다.
물을 듬뿍 주랬는데, 되려 너무 많이 준 모양인지 뿌리가 썩어서 줄기가 똑 떨어져 죽고 말았다.
겉모습은 멀쩡했는데 화분 속 흙을 뒤져보니 뿌리 썩은 습한 흙냄새가 났다.
죽은 식물 냄새는 이렇구나. 순간 너무 속상해서 머리가 서늘하고 몸이 욱신거렸다.
겨우 식물 하나 죽은 거로 유난떠는 괜한 오버나 감상도 아니었고, 솔직한 내 마음이 그래서 난 조금 놀랐다.
한 달을 키운 식물이 죽어도 마음이 이러한데 동물이나 사람은 어떨까 싶었다.
식물도 사람 같아서 볕 적당히 쐬고, 물 잘 먹고, 숨을 잘 쉬어야 튼튼하게 자란다고 했다.
나는 요즘 식물처럼 살고 있다. 몸도 마음도.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기를 식물처럼 후우 후우. 천천히 느끼며 자라고 있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빛도 식물도 집도 따뜻한 이 공간이 참 좋다.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른 소리가 없는 세계 (0) | 2016.04.25 |
---|---|
슬픔을 융털처럼 (0) | 2015.06.26 |
오늘의 문장들 (0) | 2015.06.09 |
밥해먹기의 귀찮음 (4) | 2015.06.01 |
뜨거울 때 꽃이 핀다 (2) | 2015.05.28 |